서울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대학 생활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던 3월의 어느 날, 문학 동아리에 들었다. 큰 탁자를 중심으로 두 개의 긴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의자에 앉아 누구는 담배를 피웠고 누구는 기타를 쳤다.

 

이상한 일이었다. 동아리 방에 있던 네 명의 선배 중에 두 명이 나와 같은 과였다. 과방, 도서관 그리고 데모질 하는 곳을 빼면 얼굴 보기 어렵다는 선배를 둘이나 그것도 주말 오후 동아리 방에서 만났다. 맥주를 마셨고 동아리 가입원서를 썼다. 그렇게 동아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정치적으로 정권이 교체된 해였고, 경제적으로는 IMF에 구제금융 신청 이후 연일 부정적인 기사가 도배되던 때였다. 뭔가 어수선하고 정돈 되지 않았던 시기, 동아리 방은 이상하고 어디 하나가 결핍된 사람들로 득시글거렸다. 명색이 문학 동아리였기에 술자리서 풀어내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문학과 관련된 이야기였지만, 늘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는 문학에 목숨을 걸었고 실제로 몇몇은 등단을 해서 시인 혹은 소설가의 칭호를 얻었지만, 동아리를 20대의 열정과 열망을 풀어내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의 우리에게 윤동주는 서정시인이었다.

수험생 시절의 윤동주는 항일 민족시인이었지만, 스무 살의 청춘이었던 우리에게 그는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감수성 깊고 수줍은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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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우리가 알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윤동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한 사람, 송몽규를 불러낸다.

 

어쩌면 윤동주 보다 더 감수성이 풍부했을지 모를 시인, 오로지 문학에만 힘썼다면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이태준의 뒤를 이을 수 있었을 소설가. 독립의 열망에 문재(文才)를 채 꽃 피워보지도 못했던 비운의 천재.

 

쉽게 이야기 하지만 보기는 어려운 영혼의 동반자, soulmate가 바로 윤동주와 송몽규 이 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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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상황마다 시가 내레이션으로 깔린다. 이게 꽤 좋다. 별 헤는 밤은 풋풋하다. 참회록은 시기적으로 창씨개명을 앞두고 쓰여 졌다. 그 울림. 상황에 맞는 시의 울림은 귀를 스쳐 가슴을 친다.

 

아쉬운 점도 있다. 아무래도 영화다 보니 극적인 연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해하는데, 그래도 마지막은 아쉽다. 몽규의 탈출과 동주와의 만남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뭔가 좀 작위적인 느낌이다. ! 그리고 동주의 서울말! 서울 왔다고 금세 서울 말 쓰는 건 좀 아니잖아. 평생 써온 북간도 사투리가 서울 생활 일·이년 만에 사라질까.

 

괜찮다. 그래도 좋다.

문학청년을 꿈꿨던 스무 살 때가 생각났고, 잊었던 시의 울림을 느꼈다.

 

잊고 있었던 것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