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 열풍이 대한민국을 뒤덮었던 때가 있었다. 넘쳐나는 정보가 불안으로 되돌아오는 시대.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여 불안에서 탈출하고 싶은 심리가 어쩌면 그 열풍의 발화점이었는지 모른다. 멘토의 대상은 종교인, 기업인, 소설가 등등다양했는데, 공통점은 구도자라는 외피 속에 깊은 사고가 담겨 있다는 환상, 이른 나이에 성공한 사람의 말이 그와 같은 사회적 지위를 담보한다는 착오, 그들이 살아온 궤적이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등 비현실적인 논리에 기반하여 선택된 유명인이라는 점이다.

 

보다 유명하고, 보다 성공했고, 보다 훌륭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들은 자신이 마치 대단한 위인이라도 되는 양 방송과 강연과 지면을 통해 삶의 방식을 설파했다.

 

하지만, 오로지 나를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진심이 담긴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멀리 있고 나를 알지도 못하는 타인이 아니다. 바로 내 곁에서 언제나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 바로 부모님이다.



부모란 말이야자식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 일이 어렵고, 힘들고, 위험할 것 같다고 생각되면 처음엔 반대를 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자식이 위험에 빠지거나 고생을 한다고 하면 찬성할 부모는 없는 법이거든. 그런데 말이야자식이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죽어도 그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제일 잘 되기를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란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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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아버지가」

아버지가 보여준 인생 지침을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씩 깨닫는 작가의 이야기다.

 

대개의 부자관계가 그렇듯 나도 아버지와 오사바사하지는 않다. 오히려 서로 으르렁대고 부딪치는 일이 잦았다. 못마땅한 일에 불같이 화를 내고 돌아서면 잊어 버리는 아버지와 차곡차곡 쌓아두다 한번에 터뜨리는 내가 부딪칠때마다 가장 힘든 사람은 중간에 낀 어머니였다.


동생이 결혼하고 외손주들을 덥썩 안겨준 이후 아버지의 불 같은 성격도 어느정도 가라 앉았고, 나도 이립을 넘어 불혹에 가까워 지면서 까칠함이 무뎌져 아버지와 아웅다웅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일도 거의 없다.



생각하니 딱히 다정하게 대화를 주고받은 기억은 없다. 평소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시다가 한마디 툭 던진 말에서 마음이 읽히는 정도였다


- p.170

 

글을 읽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한 적이 있었나? 아버지 마음을 읽으려 한 적이 있었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부딪치기만 했지, 왜 아버지가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서면 밀려드는 후회와 자책. 이제 그 감정안의 부유물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겠다. 나는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텔레파시를 개발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아버지쪽으로 한 발 다가서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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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리지 않으셨어요?”

네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리라 믿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내가 반대를 했으면 넌 가야 할 이유만 찾아서 헤맸을 것이고 그 할아버지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 p.124


아버지의 남다름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억지로 방향전환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주위를 둘러보게 함으로써 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음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것은 나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 pp.146~147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멘토임을 고백한다.

그의 아버지는 어떤 것이 올바른 길인지 온몸으로 증명하셨고, 생활의 소소한 문제부터 마주하기 버거운 큰 어려움까지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존재다. 삶의 이정표. 작가는 의뭉스럽게 그냥 보통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게 어디 '그냥 보통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인가. 손 끝에서 불꽃을 쏴라!”고 외치던 통키 아버지보다 훨씬 현실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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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내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알 것 같다. 지금 나 역시 내 아이에게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는 살아 움직인다. 내 아이도 자연스럽게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 또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 오셨다. 아버지의 이야기로 살아나신 할아버지는 나의 이야기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신다. “아가.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등에 난 작은 종기 때문에 돌아가셨대, 그러니 아주 작은 상처라도 우습게 여기면 안 되는 거란다.” 


- pp.107~108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도 들어왔다.

다음 주말엔 집에 내려가야겠다. 아버지께 술 한잔 따라 드리며 이런저런 말을 붙여봐야겠다. 약주 한잔 드시면 이런저런 말씀이 많아지는 아버지, ‘뭔 술을 먹자는 겨?’ 좋은 내색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로 뚱하니 말씀하실 아버지가 벌써부터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