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부끄러운 기억에 한숨을 내쉴 때가 있다.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해봤자 이미 일은 벌어졌고, 부끄러움만 남았다. 그 사건들이 혼자 있을 때였다거나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예컨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무심코 따라 불렀는데, 지하철 안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든가 하는- 그 부끄러움은 수면 아래 오랫동안 잠들 수 있겠지만, 함께 있던 사람이 가끔 혹은 종종 만나는 사이라면 타인의 의지로 거침없이 이불킥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구아바 형은 대학 시절 동가식 서가숙하며 학교 주변에서 자취하는 이들의 방을 떠돌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동아리방 지박령으로 살았다.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뛰어다닐 정도로 혈기 왕성하던 스무 살 무렵의 우리는 미숙하고 어리석어 꽤 많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하필이면 그걸 보고 듣고 겪은 사람이 구아바 형이다. 그냥 혼자만의 기억으로 가끔 떠올리며 킬킬대는 정도로 그쳤으면 좋으련만 형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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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요즘도 여기저기 똥 싸고 다니냐?”

 

뜬금없는 말에 G는 눈만 끔뻑댔다.

 

! 또 뭔 소릴 하려고 그래요. 얼른 밥이나 먹어요.”

 

-한 느낌이 들어 얼른 말을 막았다. 얼굴도 잘 모르는 후배들이 잔뜩 있는 자리, 나팔수가 나팔을 들고 단상에 올랐다. 자칫하면 G의 흑역사가 터진다. 그것도 후배 결혼식장에서.

 

인마! 그게 뭐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을 막아. 빨간 조끼! 15학번이라고 했나? 네가 대답해봐. 피시방 앞에서 똥 누는 게 죄냐?”

?”

 

갑자기 지적을 당한 후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G는 피시방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변을 본 적이 있다. G의 전역을 축하하는 자리였고 방학임에도 많은 사람이 모였던 날이었다. 부대 바깥은 공기도 맛있다고 안주도 없이 미친 듯이 술을 들이켜던 G가 갑자기 사라졌다. 사람들이 걱정되어 그를 찾아 나섰는데, “! 선배!!”하는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사람들과 우르르 달려갔을 때, 피시방의 형광 간판 아래 쭈그리고 앉아 우리를 쳐다보던 하얀 얼굴. 뽀얀 엉덩이. ! 생생하다. 그때 그는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가. ~. 얼른 내 눈앞에서 사라져.”

 

구아바 형이 그날의 일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말해봐. 피시방 앞에서 똥 누는 게 죄냐? 죄냐고?”

!”

 

그때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한 G의 단말마적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

후배가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구아바 형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음식을 나르는 알바생을 불렀다.

 

저기요, 아가씨. 똥 누는 게 죈가요?”

?”

피시방 앞에서 똥 누는 게 죄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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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도인 흉내를 내며 멀쩡하게 사는 듯 보이지만, 구아바 형의 과거 또한 화려했다. 문제는 이 양반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 하지만 음흉하게도 그 본모습을 꼭꼭 숨기고 잘 보여주지 않아 실체를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구아바 형은 술을 마시면 높은 곳에 오른다.

나무를 타고, 전봇대에 오른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

 

언젠가 구아바 형의 고향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어릴 때 어땠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구아바? 천재였어요. 기장에서 알아주는 천재.”

또라이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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