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란 데는 아주 평화스러운 곳이거든요. 책이 잔뜩 있고 모두 그걸 읽으러 오죠. 정보는 모두에게 열려 있고, 아무도 다투거나 하지 않아요.”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문학사상, p.288

 


학기 말이 다가오자 주말의 도서관은 다시 붐비기 시작합니다. 토요일 오전 8, 열람실 한 켠에 가방을 내려놓고 스틱 커피와 텀블러를 가지고 정수기가 있는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주말의 아침잠을 떨치기 위해선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텀블러에 카누 하나를 넣고 뜨거운 물을 반쯤 담아 살짝 흔들었습니다. 뜨거운 김이 솟아나는 걸 잠깐보다 찬물을 조금 탔습니다. 좋아하는 적당한 온도의 커피를 만들어 2층으로 올라가는데, “아저씨.” 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만날 때마다 매번 사탕을 주는 중학생입니다.

 

동진이구나. 공부하러 왔어?”

아니요. 아저씨 보러요.”

? ?”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커피 마실래?”

 

커피 한 잔을 더 타서 북카페로 갔습니다.

 

뭔데? 고민 있어?”

아저씨.”

그래 말해.”

저 신부님이나 할까 봐요.”

?”

차인 거 같아요.”

 


--- ** --- ** ---


 

올해 중학교 2학년 동진이는 첫눈에 반한 짝사랑하는 누나가 있습니다. 그 누나를 본 순간, 성당의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그 누나만 남았다고 하네요. 그때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으니까, 벌써 6년째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나 눈에 들려고 어렸을 때 성당에서 복사(服事)도 하고 주일 미사도 빠뜨리지 않았다지요. 그런데 이 누나가 고등학교 간 후에 성당에 얼굴을 드문드문 내밀다가 요즘에는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뭐 하냐.’고 카톡을 보내면 도서관에서 공부해.’라고 해서 도서관에 와 보면 이상한 형들이랑 속닥거리고 있어서 속이 무척 상했대요.

 

그때 아저씨가 그 형들한테 꺼지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찍소리도 못하고 꺼졌잖아요.”

 

지난여름, 도서관에서 키득대고 소란스러운 고등학생들에게 주의를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꺼지라고하지는 않았어요. ‘나가.’라고 했지요.

 

지난주에 성당에서 만났는데요, 제가 그랬거든요. ‘누나 나 서울대 갈 거야. 그리고 누나한테 청혼할 거야. 그러니까 기다려줘.’”

!”

 

뜨거운 커피를 마시다 사레들릴 뻔했습니다.

 

그러니까 뭐래?”

웃었어요.”

웃었다고?”

. 그냥 웃다가 갔어요.”

근데 왜 뜬금없이 신부님이 되겠다는 거야?”

제가 그때 그랬거든요. 누나가 나 안 받아주면 신부님 하면서 평생 혼자 산다고요. 그런데 이제 카톡에 답장도 잘 안 해줘요.”

 

저는 문득 네로 25의 최양락 씨가 생각났습니다.

 

! 신이시여! 이 저돌적인 청춘을 어찌해야 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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