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만감을 싫어한다. 배가 가득 차면, 살이 찌고 배가 나왔던 시절 내 주변을 맴돌던 특유의 불쾌한 나른함과 무기력증이 찾아온다.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다 보니 식당에서 나오는 1인분은 대개, 내게는 과한 양이다. 그래서 음식점에 가서 주문할 때, 양을 적게 달라고 이야기를 하거나, 빈 접시를 달라고 해서 먹기 전에 절반 정도를 덜어 놓는다.

 

마이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오래전 축하 파티를 크게 연 후, 매년 이때쯤 모여 왁자지껄 먹고 마시고 논다. 올해는 날짜가 가족 모임과 겹친다. 아버지 생신이라 내려가야 해서 참석 못 하겠다.’고 이야길 하자, “그럼 저녁이나 같이 먹자.” 마이크는 우리끼리 먼저 만나자고 했다.

 

마이크 부부와 커피만 마시고 헤어지려 했는데, K가 자기도 끼고 싶다고 징징거렸고 어디서 말을 들었는지 까르푸가 자기를 빼면 안 된다.’고 아득바득 우겨서 자리가 커졌다. 평일 저녁의 만남이라 대학시절 자주 갔던 중국집에서 간단하게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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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잠깐 둘러보고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자주 갔던 중국집이 문을 닫아서 다른 곳을 추천받았다. 탕수육과 짬뽕이 맛있는 집이라 했다. 탕수육과 팔보채 그리고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켰다. 나는 삼선 짬뽕, 마이크 부부는 중화 우동, K는 볶음밥, K의 아내와 까르푸는 간짜장을 주문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빼갈 한 병은 먹어줘야 하지 않겠냐.”

좋지. 시켜.”

 

음식이 나오고 테이블이 가득 찼다. 빈 그릇을 하나 달라고 해서 절반 정도를 덜어내는데, 까르푸가 고량주를 먹자는 말을 꺼냈다. 흔쾌히 동의하는 남편에게 자기 차는 어쩌려고.’ 마이크의 아내 하루카가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괜찮아. 대리 부르면 되지.” 마이크는 우리 중에 술이 제일 약하지만, 술을 주문할 때만큼은 가장 호기롭다.

 

! 그거 안 드시면 제가 먹어도 돼요?”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 거리던 K가 내가 덜어 놓은 음식을 넘봤다. 자신의 몫으로 나온 짬뽕 국물을 아내에게 건넨 터라, 국물이 아쉬운 듯했다.

 

그려.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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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지기 아쉽다. 2차를 가기로 했다.

 

치맥으로 가자!”

좋아!”

 

적당한 곳을 찾아 몇 군데를 돌다가 괜찮다.’ 싶은 곳으로 들어갔다.

양념 하나, 프라이드 하나, 순살 반반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만나니 기분이 좋고만!”

 

흥이 난 마이크가 500cc 잔을 들며 계속 건배!”를 외쳤다.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맥주 절반이 사라졌다.

 

다들 슈톱!”

 

사람들의 시선이 마이크를 향했다.

 

잠깐만 기다려.”

 

마이크는 보석 세공사가 원석을 감별하듯, 이제 막 테이블 위에 차려진 치킨을 신중한 표정으로 하나씩 들어보며 접시에 담았다.

 

이건 찬샘이 거. 얘 이렇게 안 하면 또 치킨 한 조각 가지고 끝날 때까지 깨작댄다. 너 이눔 시키, 이거 다 먹어야 집에 갈 줄 알어!”

, 그건 좀 많은데.”

닥치고 드시지!”

 

술자리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안주를 더 시킬지 고민하기에, ‘아쉬울 때 헤어져야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고 친구들을 설득했다. 10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 남은 거 제가 먹어도 돼요?”

 

마이크가 내 몫으로 챙겨준 치킨이 고스란히 남았다.

K가 눈독을 들이기에, 접시째 건넸다.

 

! 너 좀 치사하지 않냐?”

 

갑자기 까르푸가 버럭 화를 냈다.

 

! 뭐가?”

아니 너 말고, K 너 말여.”

왜요?”

 

K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까 짬뽕두 다 뺏어 먹구, 치킨두 다 뺏어 먹구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찬샘 형이 안 드셔서……. 찬샘 형 원래 소식하잖아요.”

소식? 웃기고 자빠졌네. 소식하는 놈이 앉은자리서 만두 5인분을 다 처먹냐?”

 

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까?

 

그려. 대체 머 때미 화난 겨?

찬새마. 너두 그러는 거 아니다. 내가 짬뽕을 을마나 좋아허냐. 근데 니가 짬뽕을 시키니께 내가 짜장을 시킨 거 아녀. 우리 짝! 하믄 짝! 아니었냐?”

 

! 그랬구나. 그게 서운한 거였다.

학창 시절부터 같이 밥을 먹으면, 내가 덜어 놓은 음식은 늘 까르푸 차지였다. 그게 지금껏 이어져 왔는데, 자기 몫이라 생각했던 것을 K가 가져간 것이 서운한 모양이다.

 

아이구. 우리 까르푸 장개들더니 애가 다 되었네. 그게 삐질 일이냐? 삐질 일이여?!”

삐진 거 아니거든!”

금요일에 밥 같이 먹자. 됐지?”

 

주둥이가 댓 발 정도 나왔던 까르푸가 배시시 웃었다.

 

증말? 몇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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