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소문이 파다했다. 구내식당 조리 실장, 오 실장이 매일 술을 마신다고 했다. 새로 들어온 젊은 여사님과 단둘이서! 어쩐지 만나기만 하면 한잔하자고 조르던 사람이 요즘 잠잠하다 했다.
 
몇몇 사람 사이에서만 돌던 가십거리도 안 되던 이야기가 수면위로 떠오른 건, 지난달 구내식당 모 여사님이 퇴사 문제로 인사 팀장과 면담하며 뱉은 발언이 폭탄이었다. ‘오 실장이 은순이 어깨동무하고 가슴을 만졌다!’ 회사에서 이 일을 조사하는 와중에 이런저런 말이 흘러나왔다. ‘모든 사람에게 땍땍대는 오 실장이 은순이한테는 나긋나긋하더라.’, ‘퇴근 후 매일 오 실장이 은순이 하고 술 마시러 가더라.’, ‘은순이가 실장 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안 나오더라.’…….
 
오 실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길길이 날뛰었고, 당사자인 은순 여사님도 ‘그런 적 없다.’고 소명함으로써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퍼 날랐던 이런저런 이야기는 당사자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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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퇴식구에 식기를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 한식 코너에서 오 실장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랜만은 무슨…. 며칠 전에도 봤구만.”
“퇴근하고 뭐 혀? 한잔해야지?”
“허이구.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오지 절간에 사는 중 같은 놈’한테 술을 다 먹자고 한댜. 됐슈.”
“그럼, 커피 마실랴? 팀장 좋아하는 얼음 가득 넣은 션한 냉커피루.”
“커피유? 좋쥬. 8시에 봐유.”
 
내가 집돌이긴 하지만, 퇴근 후 회사 사람과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할 정도로 방바닥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커피 한 잔 마시는 데 시간이 걸려 봤자 얼마나 걸리겠는가.
 
자리에 앉은 지 채 삼 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대단한 착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들이켠 오 실장이 남은 얼음을 1/3쯤 입속에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내게 물었다.
 
“혹시 A 회사에 아는 사람 있어? 근데, 여기 커피 리필 되냐?”
 
오 실장을 추문에 휩싸이게 만든 장본인, 모 여사님이 A 회사 구내식당으로 이직했다고 한다. 뒤끝 있기로 유명한 오 실장의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졌다.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얼마나 화가 나는지……, 두서없이 쏟아지는 말의 폭풍은 ‘고객님. 저희 영업 열 시까지입니다.’ 일어나기를 종용하는 커피 가게 점원의 방문이 있고 나서야 잦아들었다. 밤 아홉 시 오십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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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몸을 흔들어 떨어뜨린 낙엽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신호등 앞, 취객과 곧 취객이 될 사람들 틈에 끼어 녹색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술 한잔할 텨?”
“됐슈.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겨. 집에 갈래유.”
“아니 대체, 집에 우렁이 각시라도 있어? 왜 이르케 집에 못 가서 안달을 헌댜.”
 
출근할 때 100%였던 에너지가 퇴근 무렵이면 20%까지 줄어든다.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전속력으로, 가능하면 빛의 속도로 집으로 가는 것뿐이다. 등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 충전이 되지 않는다. 절전모드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시간이 너무 늦었슈. 술은 담에 해유.”
“담에 은제?”
“음…, 담 달 초?”
“약속한 겨!”
 
팔뚝이 간질간질했다. 화상으로 생긴 상처에 어느새 딱지가 자리를 잡더니 이제 거의 다 나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제는 물이 닿아도 쓰리지 않다.
 
 

 
 
긴 여름의 끝자락에 생긴 상처가 짧은 가을의 한중간에서 그 흔적을 털어내려 하고 있었다.
 
오 실장과의 만남은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시기, 그의 마음속 상처에 딱지가 앉고 찬 바람에 간질간질 신호를 보낼 무렵이 좋겠다. 그때쯤이면 타인의 말이 귀를 스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겠지.
 
“봐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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