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 사고가 났다. 어머니 모시고 병원 가는 길, 우리 차선으로 화물차가 무리하게 끼어들면서 정체가 일어났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SUV가 뒤에서 내 차를 들이받았다. 어머니 어깨 수술 후 한달, 수술 경과가 좋아 ‘이제 보조기를 떼도 되나.’, 고민을 하던 7월 말이었다.
 
앞 차와 간격이 있어 연쇄 추돌로 이어지지는 큰 사고는 면했지만, 재활 기간 어깨에 가해진 충격은 잠잠하던 통증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머리, 목, 어깨, 허리, 다리……. 전방위적인 통증이었다. 어머니는 이후 오랫동안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치료받아야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조심한다고 해도 도로 곳곳에 빌런과 도라이들은 있게 마련이고 그들이 일으키는 돌발 상황은 다채롭고 예측 불가능해서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분명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고 당사자가 되어보니 그 여파는 내가 짐작했던 것 이상이었다.
 
차를 바꿔야겠다. 경차는 모든 게 좋지만, 딱 하나의 단점, 사고에 취약하다. 부모님 모시고 종종 병원에 가는 내게 그 하나의 단점이 치명적이라서, 조금 더 크고 안전한 차로 바꾸기로 했다.
 
“큰 차로 해.”
“큰 차요? SUV요?”
“응.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으면 좋겠어. 밭에 다니려면 그게 좋아.”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며 차를 바꾸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세단보다 SUV를 원하셨다. 가해 차량이 대형 SUV여서 그런가 했는데, 그게 아니고 밭에 다닐 때 이런저런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 ‘스포티지’를 사. 사륜으로.”
 
아버지가 스포티지를 추천했다. 그렇게 새 차 모델이 결정되었다. 스포티지, 4륜, 하이브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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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곰곰이 생각하니 새 차를 아버지 드리고, 아버지 차인 K3를 내가 운행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SUV를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기엔 너무 비효율적이다. 아버지도 좋다고 하셔서 ‘그럼 옵션은 아버지가 선택하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가 쓸 차니까, 옵션도 아버지가 원하는 것으로 넣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서 거절했더니 아버지가 문자를 보냈다.
 
[ 여기 기아 대리점인데, 인증 문자 가믄 알려줘야 된댜. ]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드렸다.
 
“씩씩이가 기아 차 팔잖어. 어차피 살 거믄 여서 하나 팔아줘야지. 잠깐만 있어봐, 씩씩이 바꿔줄게.”
 
‘씩씩이’는 한동네서 자란 형이다. 기아자동차 딜러를 한다는 걸 알긴 했지만, 거기서 살 생각은 없었다. 딱히 친했던 것도 아니었고, 유년 시절 이후 만난 기억도 없다.
 
“찬샘아. 고맙다.”
 
에효……. 그래. 어차피 아버지 드리기로 한 차, 구매도 아버지 뜻대로 하는 게 맞지 싶다. 그날 저녁, 집에 내려왔을 때 아버지는 돋보기를 쓰고 대리점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보고 계셨다.
 
“역시 흰색이 낫겄지?”
“그게 무난하죠.”
 
아버지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원하는 선물을 받은 사춘기 소년의 미소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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